"사용자 경험 설계가 곧 방법론 활용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사용자 경험 설계 과정에서 많은 방법론들을 활용합니다.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함인데요, 최근들어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세스에 입각한 방법론 위주의 진행보다는 빠른 개발과 탄력적 대응을 골자로 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공개 토론회에서는 그간 당연시 되어온 사용자 경험 설계와 방법론 간의 상관관계, 그리고 지금과 같은 추세 속에서 UX 디자이너들이 갖추어야 할 능력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본격적으로 토론 내용을 살피기에 앞서, 이번 쟁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배경부터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트잇, 수성매직, 그리고 화이트보드"
프로세스와 방법론 중심의 UX 디자인 프로젝트
종전의 UX 디자인 프로젝트라고 하면 잘 짜진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법론들을 적용,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UX 디자이너라면 다양한 방법론에 정통하고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을 기본 소양으로 여겼습니다. 서점의 UX 디자인 관련 서적들만 하더라도 방법론 교육과 실습 위주의 내용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벽면 한 면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 더미는 UX 디자인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빠르게, 더욱 더 가깝게" Agile, Lean UX와 같은 발빠르고 탄력적인 시스템으로의 전환
하지만 개발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면서 기존 프로세스 위주의 방법은 난항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짧은 시간 안에 정해진 스케쥴을 따라 리서치와 방법론을 적용하는것은 무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또한 잘 계획된 프로세스 하에 진행된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란 보장이 없단 것 역시 이유 중 하나 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Agile, Lean UX와 같이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즉각적인 피드백 구조의 시스템이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만들고, 사용자들이 직접 사용하게끔 한 뒤, 필요한 부분부터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은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잇이 사라진 벽면엔 어느덧 휘갈겨 그려진 UI 와이어프레임과 워크플로우들이, 그리고 책상 위에는 UX 방법론 관련 서적들 대신 개발과 서비스 관련 서적들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제 무엇인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술과 능력의 요구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개발 환경 속에서는 방법론을 적용해볼 시간도 없이 빠른 속도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따라서 기존 UX 디자이너가 담당하던 방법론 전문가로서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팀 내 지위가 위태로워지자 몇몇은 프로젝트 매니저를 대신하거나 리서처로 방향을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또는 코딩을 배우거나 그래픽 디자인을 배워 하이브리드 영역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전업'에 가까웠지, 변화를 맞이한 UX 디자이너의 새로운 전문성 확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은 우리, UX 디자이너들에게 이렇게 묻고있습니다. UX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UX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무슨 기술을 배우고,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하는가? 방법론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전문가들과 차별화된 우리의 전문성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 스스로가 이 질문들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일분일초를 다투는 개발 환경 속에서 UX 디자인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빛좋은 개살구로 비춰지고 말 것입니다. 포스트잇과 수성매직 대신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금번 토론회는 이런 의문을 통해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토론회 기본 정보
일시: 2013. 12. 29. AM 11:00 ~ PM 01:00
장소: 압구정역 삼성 디자인 맴버십 (전 삼성 UX 맴버십) 건물
인원: 5명 (편의상 영문 이니셜로 표기)
A - 그래픽, GUI 디자이너 / B - 포탈사이트 사용성 테스터
C - 디자인 학부 재학생 / H -디자인 학부 재학, 삼성 디자인 맴버십
J - 통신사 UX 부서 연구원
[토론 세부 주제]
1. UX 프로젝트에서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
2. UX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UX 방법론 전문가만을 의미하는가?
3. UX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핵심 능력은 무엇인가?
4. 다른 전문가들과 차별화된 우리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첫 번째 세부 주제
"UX 프로젝트에서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
H: (포괄적인) 명칭에서 오는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UX디자이너란 말은 조심해서 써야한다. UX란 말이 굉장히 큰 범위인데, 모두 잘할 수는 없다. 인터렉션 디자이너? GUI 디자이너? 사용성 평가 담당? (UX 디자인 분야 속) 개인으로서 조금 더 정제된 정체성을 갖추어야 할 것 같다.
C: 작은 규모의 벤쳐회사일수록 그러한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 작은 기업에서는 UX 디자인을 정확하게 범주화하기 어렵고, 소수의 인원에게 더욱 많은 능력을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UX 디자이너는 전분야에 걸쳐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A: 작은 규모에서는 UX 디자이너가 자문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식을 알려주고 프로젝트를 중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방향이 UX 디자이너만의 전문성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J: 같이 일했던 마케팅 회사에서도 UX방법론을 사용해서 '자신만의 특화된 리서치'란 이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볼때, 단순히 방법론 전문가를 고수하기엔 우리 (UX 디자이너들) 위치가 조금 애매해졌다고 생각한다.
B: CX나 GX등 용어가 난립하고 있다. 경험이란 단어가 가지는 모호성으로 인해 UX 디자인이란게 실체없는 허상같이, 소위 ‘마법의 단어’로 치중될수도 있다. 정확히 UX 분야 안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전문화해야한다.
두 번째 세부 주제
"UX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UX 방법론 전문가만을 의미하는가?"
H: 보통 디자인의 개념에서 가지는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논리나 내실이 차별점이 되어야한다. 하지만 (방법론과 같이 구체적인 결과 없이) 우리의 무형적 가치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내부 소통용으로 방법론은 분명 중요하고, UX 디자이너들은 어떤식으로든 UX 방법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C: UX 디자이너가 마케터가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현재 UX 디자인 방법론은 대부분 여타 사회과학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단순히 방법론만으로 UX 디자인을 규정해버리면 오히려 마케터나 다른 사회과학자들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실험, 혹은 프로토타이핑’에 조금 더 특화된 특징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J: UX 방법론이 항상 옳은 결과를 가져오리란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전에 참여했던 세미나에서는 UX 디자이너들이 여러 방법론을 사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결과물과 연계가 안됐었다. ‘방법론을 사용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라는 식의 논리는 부족하다.
B: 오히려 현장에서는 과도한 리서치나 잦은 사용성 테스트 때문에 시간을 뺏기는 경우가 많다. 많은 시간을 사용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을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기업 입장에서 시간과 자금을 투자한 (방법론 중심의) UX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UX 디자인 자체에 불신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을 제쳐두기엔 UX적인 측면을 증명하고 검증할 방법이 부족한 실정이다.
H: 본래 방법론은 객관적 데이터 확보와 논리적 전개가 목적이었는데, 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허울로 변질되어가는 것 같다.
C: UX 방법론이 중점이 되면서 실질적인 UX 설계보다는 리서치 비중이 높아졌었다. 그러다 보니 결과보다는 과정에 신경쓰게 됐고, 리서치의 신빙성이나 의사결정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문제는 이렇게 된다면 리서치가 주업무이고, 보다 큰 규모의 정량조사가 가능한 마케터가 오히려 프로젝트에 더 적격이라는 거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런 이유(과정중심, 설득중심, 의사결정을 위한 리서치)로 인해 진행하는 방법론은 UX 디자인 자체에 오히려 방해를 준다고 생각한다. H의 말대로 방법론은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방법론보다 본질적인 UX 설계 이론 및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세부 주제
"UX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핵심 능력은 무엇인가?"
J: 설계하는 능력. 중간 결과물을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지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핵심적인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방법론이나 도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직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 더한다면 UX 디자인과 관련된 것 외에 외부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 역시 매우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A: 규모가 작은 사업의 경우에는 빠르게 만들어 좋은 결과물을 얻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아무런 검증없이 개발에 착수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가설 및 검증과 개발 사이에서 얼마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지, 순발력과 유연함, 그리고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버튼 하나를 넣고 빼는데에도 많은 논의가 오가고 검증이 이루어지는데, UX 디자이너라면 최적점을 찾아 빠르게 검증하고 개발에 착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C: UX 설계 최적화와 빠른 개발 속도,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많은 경험 뿐만 아니라 확고한 (인지과학적)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앞선 예에서 처럼 버튼을 넣을지 말지 고민할 때, 관련 이론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굳이 실험을 하지 않고도 최적의 결과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경험과 지식이 결합된 직관이야말로 UX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H: UX 방법론에 대한 전문성만큼이나 인지과학에 대한 기초 지식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사람은 다르지만 전체로써의 사람은 어느정도 공통점을 갖는데, 인지과학을 통해 '사람은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서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의 공통적인 답안을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예외인 것들만 방법론이나 실험을 통해 검증하면 C가 얘기한 것처럼 최적화와 속도 두 마리의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네 번째 세부 주제
"다른 전문가들과 차별화된 우리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C: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전문성은 사람에 대한 기본 지식, 즉 인지과학의 기초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일반적인 방법론이나 리서치와는 다르다. 몇 명을 테스트했느냐는 객관성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보편성을 알고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을땐,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빠른 프로토타이핑으로 검증해야 한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잘보여주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정리하자면 인지과학 기초를 닦고, 실험~검증 능력을 갖춤으로써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 실험 설계 쪽이 (그래픽) 디자이너나 마케터와의 차별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방법론도 게을리해선 안된다.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제외하고 UX 디자인을 설명하자면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가? 어쨌든 프로세스와 방법론 또한 UX 디자인의 일부이고,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논리적 객관성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J: 시각화에 대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결과 내용이라도 잘 시각화된 것이 더 잘 전달된다. 곧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 한다. 우리 나름의 시각화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으면 그것도 새로운 전문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토론회 정리를 마치며...
지금까지 UX 디자이너가 작금에 마주한 현실과 더불어, 새로이 요구되는 능력 및 역할에 대한 의견들을 그 배경부터 시작하여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다소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사용자 경험 설계는 리서치 기반의 수동적인 성격을 띠어왔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논리적 정합성 및 객관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법론과 리서치 툴을 발전시켜왔지만, 오히려 사고의 유연함과 대응력 및 순발력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또 방법론의 완성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 나머지 정작 사람, 사용자에 대한 기초적인 것들에는 관심을 덜 준 것일지도 모르지요.
어찌 되었든 그간 방법론 중심으로 발전한 사용자 경험 설계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기존의 방법을 적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UX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디자이너, 마케터와 같은 여타 다른 전문가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만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UX 방법론 전문가 외의 새로운 역할로 인도할까요? 이 글에서는 토론 과정에서 도출된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쳐볼까 합니다.
UX 디자이너의 여러 새로운 역할 중 가능한 하나,
시각화 능력을 바탕으로 한 능동적 관찰자이자 실험자의 역할;
'사람은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서 행동하는가'라는 과학적 지식으로부터 모든 관찰과 사고를 시작.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어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스스로도 한 명의 사용자가 되어 직접 체험.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만들고, 잦은 실험 속에서 아이디어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 그리고 다시 현장 속에서 아이디어와 사용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관찰을 반복. 이 모든 사고의 전개 및 도출 과정을 다른 전문가들의 머릿 속에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시각화하여 전달. 그럼으로써 보다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UX 전문가.
언제나 그렇듯, 토론은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 더 나은 합의점을 도출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이번 토론 역시 UX 디자이너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답을 찾기보단 다양한 의견 속에서 현재를 돌아보고 내일을 조망하는 쪽에 중점을 두고 진행했습니다. 이번 토론 내용이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앞으로 더 다양한 주제를 통해 활발한 토론과 뜻깊은 논의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Studies] > __공개 토론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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