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udies]/__Design: 사물에 대한 이야기

사물에 대한 이야기, 서문 : 디자인 01. 제품과 사용자가 만나는 지점




사물에 대한 이야기. Prologue. Design_01. 제품과 사용자가 만나는 지점.



디자인의 다양한 역할 중에서 가장 표면적이고 우선하는 역할은 다름 아닌 형태와 관련된 기능이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다음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여러분은 얼마 전 이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잃어버렸다. 부랴부랴 새 리모컨을 사기 위해 가전제품 매장에 들어섰고, 여러분의 눈앞에 아래 두 리모컨이 놓여있다.



  


두 리모컨 중에서 어떤 제품에 더 먼저 눈길이 가는가?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구매한다면 어떤 제품에 좀 더 점수를 주겠는가? 아래의 다른 예시를 살펴보자. 이번엔 리모컨이 아니라 계산기다.



         


이번엔 어떤가? 위의 리모컨 선택에서도, 그리고 계산기 선택에서도 우리는 사물이 가진 첫 인상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우리의 눈은 '아름다운 것'을 먼저 쫓는다. 그런 연후에 우리는 가격이라던지 기능, 사용성 등 이성적인 질문들을 시작한다. 전혀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형태적으로 각인되지 못하는 제품은 이런 질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배제되고 만다.


우리는 단순히 대상 사물의 형태를 통해 아름다움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첫 인상을 통해 대상에 대한 제반 정보를 제공받는다. 따라서 사물의 형태와 관련된 디자인의 역할은 아름다운 심미성을 전달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사물의 제반 정보를 제공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 그렇기에 디자인의 첫 번째 역할은 사람과 사물이 만나는 최접점에서 사물에 대한 첫 인상, 즉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 이미지에는 심미성 또한 중요한 요소지만 이 글에서는 어떤 형태가 나은가라는 다분히 조형적인 질문보다 좀 더 기능적인 질문들을 살필 것이다. 디자인이 가지는 공통적인 기능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가공이나 조작을 가한다.'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애드리언 포티 교수의 글을 인용하자면,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p. 17) 디자인에는 사물의 형태와 관련된 기본적인 3가지 접근 방식이 존재한다.

첫째, 고풍스러운 디자인

둘째, 은폐하기

셋째, 이상향 디자인

이 세 가지 접근 방식은 다른 말로 가장, 은폐, 변형 기능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사물을 그 본질과 다른 어떤 것으로 보게 하는 능력"이다. 아래의 사례를 살펴보자.




[라디오 디자인의 변천사] 디자인의 기본적인 3가지 접근 방식이 라디오 형태 변천에 적용된 사례.

(왼쪽부터) 두 번째 사진: 라디오를 옛 가구 스타일을 본 딴 캐비닛 안에 집어넣는 방법. 과거 지향적 이었다.

                세 번째 사진: 라디오 캐비닛과 전혀 상관이 없는 가구, 예를 들어 소파 같은 가구 안에 라디오를 숨기는 방법. 급진적이었다.

                네 번째 사진: 라디오를 보다 나은 미래를 상징하는 듯 한 디자인의 캐비닛에 넣는 방법. 결국 사람들은 이 방식에 친숙해졌다.


위의 사례를 통해 디자인의 은폐, 변형 기능이 실제 사물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디자인은 익숙하지 않거나 보기 싫은 것들을 최대한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좀 더 고풍스러운 형태로 가장하며, 나아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의 형태로 변형시킨다. 이를 통해 디자인은 "사람들이 상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다." 라고 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자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즉 형태와 관련된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디자인이 사물과 사람의 접점에서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단순히 심미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의 기능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것뿐일까?


사실 사물의 형태가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과연 이 사물이 나에게 필요한가. 라는 것이다. 어떤 제품의 형태에 매료되어 필요성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구입한다면 그것은 제품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예술 장식품을 구매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사물의 필요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앞선 글에서 디자인이란 사물의 모양 외에도 사물이 만들어진 과정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던 걸 상기해보자. 사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산업과 관련하여 디자인은 보다 본질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애드리언 포티 교수는 "디자인이 통상 알려진 것 보다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훨씬 중요한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즉, 형태 외에도 우리의 결정에 경제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디자인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형태와 관련된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의 본질적 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사물의 필요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