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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__Design: 사물에 대한 이야기

사물에 대한 이야기, 서문 : 디자인 02. 접점의 이면, 관념이 거래되는 곳



사물에 대한 이야기. Prologue. Design_02. 접점의 이면, 관념이 거래되는 곳.



"사람들은 사회적 관념을 통해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회는 구체적이고 정형화된 형상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기인한 어떠한 관념이나 신념에 의해 비춰진 유동적인 현상의 연속이다. 사물의 필요성을 결정하는 디자인의 본질적 기능에 대해 다루려는 글에서 갑자기 사회와 관념에 대한 이야기라니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사물의 필요성은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고 결국 그 결정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와 산업의 관계성에 대해 먼저 살펴본 뒤 디자인의 기능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사회는 그 속에서 기인한 관념이나 신념에 의해 비춰진 현상이다. 굳이 문화인류학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분명 사회가 문화적 배경을 근거로 다양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풀이하자면 공통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당 집단에서 필요로 하는 사회적 관념 및 신념들이 만들어지고 이는 곧 사회 구성원들이나 다른 이들이 해당 사회를 바라볼 때 느끼는 이미지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시아 문화권을 바탕으로 한 우리 사회와 유럽 문화권을 바탕으로 둔 영국이나 프랑스 사회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배경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회에서 우리는 공통된 사회적 관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데렐라 신화]

(왼쪽 위에서부터) 신데렐라 동화/콩쥐팥쥐 이야기/흥부전/예쉔 이야기



우리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인 신화나 이야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문화와 민족적 배경을 넘어선 공통된 사회적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다양한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신데렐라 신화는 사회 구조 기반에 문화적/민족적 배경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어쨌든 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고 이는 곧 지금의 위치에서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계층에 대한 동경으로 이루어진다. 즉, 사회의 기반에는 어쩔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는 '신화'라는 수단으로 우리의 바람을 달랜다. 이를 두고 구조주의 이론에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 경험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모순들이 모든 사회에서 신화의 창안, 즉 사회적 관념으로 해결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과 괴리의 골은 산업화를 거치며 더욱 더 깊어졌다.



[산업혁명 당시 모순과 괴리를 희화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산업화를 통해 사회적 격차와 괴리가 심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는 신화나 영웅담 같은 사회적 관념들이 이야기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삶의 격차를 완화시키는 작용을 했다면 산업화 이후 이러한 역할을 대체하는 요소들이 등장했다. 바로 미디어와 디자인이다.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두 가지는 우리 삶의 깊숙한 곳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효과] 미디어는 사회적 관념들을 이야기보다 효과적으로 보급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관념을 현실로, 오디션 프로그램]

또한 효과적 수단에서 그치지 않고 환상 속에 머물던 사회적 관념들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방법 또한 미디어가 가진 파급효과이다.



이렇듯 미디어는 사회에 존재하는 관념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미지화' 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에 자리 잡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광고였다. 광고는 관념에 기인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광고 속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그 대상에 대해 정형화된 관념을 가지게 된다. 아래의 예시를 살펴보자.


 

[광고를 통한 이미지 전달과 관념의 형성]

우리는 광고 속 세탁기를 사용함으로써 세탁에 대한 문제가 보다 깨끗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해결될 거란 이미지를 전달받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백색가전들이 우리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킨다는 관념을 가지게 된다. 광고가 이런 역할의 선봉장은 맞지만 정도만 다를 뿐 미디어는 새로운 관념 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보다 넓은 집이 보다 나은 삶을 의미하고 다양한 가전제품들이 우리 삶을 풍족하게 하며 다양한 명품들이 삶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사회 계층별, 직업별, 연령별, 또 성별 등 다양한 기준점을 바탕으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고정관념의 영향] 두 사람 중 누가 더 친절하고 신사적일 거라 생각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위의 예시는 미디어가 우리의 사고와 시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문화적 배경까지 합세하여 사회는 관념과 신념에 비춰진 현상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가 사회에 이미지를 심는 역할을 했다면 디자인은 이를 실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한 번 광고를 예시로 살펴보자.



[디자인을 통한 이미지의 실체화]

광고 내내 거듭 강조되는 남성스러움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광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설명하고자 하는 제품을 통해 실체화된다. 곧 사람들은 광고 속 자동차를 구매하고 운전함으로써 남성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자신의 삶으로 가져오게 된다.


디자인은 "일시적인 성격의 다른 미디어와는 달리 영구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는 형태에 신화를 집어넣음"으로써 사회적 관념들을, 이미지를 실체화한다. 우리는 연비가 저렴한 경차를 몰면서 중형 세단을 동경하거나, 값싼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명품 핸드백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또는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무언가를 원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현재 지금의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고 원한다. 관념이 실체화된 사물을 소비함으로써 우리가 바라는 삶의 이미지에 다가가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품은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의 신화를 품게 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신화는 자신이 투사된 제품만큼이나 구체적인 실체로 보이게 된다." 즉, 제품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제품을 통한 이미지의 구체화]

제품에 투사된 관념은 곧 실체로서 세상에 비춰진다.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라는 관념이 생성되고 이 관념은 또 다른 소비를 불러온다.


앞선 글의 말미에서 우리는 디자인이 "통상 알려진 것 보다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훨씬 중요한 행위"라 말했었다. 산업이념에 기인하여 디자인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어야 하며 이는 단순히 형태의 호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시대 사회 속에 어떤 관념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그 관념들이 어떻게 사물에 녹아들 수 있도록 '디자인 할지' 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디자인의 형태적 기능 이외에 산업과 관련된 본질적 기능이자 역할이다.



정리해보면 그 시대 속에서 경제적 격차 혹은 문화나 이데올로기적 특색에서 기인한 사회적 관념들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삶에 다가오며 디자인을 통해 실체화되어 우리 삶에 뿌리내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사물이나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사물을 통해 사회적 관념을 소비하고 또 재생산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통해 사물과 사람의 접점 이면에서 관념이 거래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디자인의 형태적 변형 기능, 그리고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여 관념을 구체화하는 역할이 산업과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디자인 관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보면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