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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__Design: 사물에 대한 이야기

사물에 대한 이야기, 서문 : 디자인 03. 산업 속에서 디자인이 걸어온 길



사물에 대한 이야기, Prologue. Design_03. 산업 속에서 디자인이 걸어온 길.



지금까지 우리는 앞선 글들을 통해 디자인의 두 기능과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품과 사용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디자인의 가장 표면적인 기능, 사물의 형태를 가장/은폐/변형하여 해당 사물의 첫 인상과 이미지를 부여하는 기능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다음 “접점의 이면, 관념이 거래되는 곳”에서는 사물의 이미지가 심미성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회 속의 다양한 관념과 신념으로부터도 기인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과 신념은 곧 사회적 수요를 형성하고 디자인은 이를 사물로 ‘실체화’하는 역할을 수행함 또한 살펴보았다. 디자인의 기능과 역할들을 정리해서 도표로 나타내보면 아래와 같다.




[산업과 시장 속에서 디자인의 기능과 역할]



위의 도표를 통한 디자인 기능과 역할 정리는 곧 디자인 관점에서의 사회와 산업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들을 위의 도표로 해석해 보면 그 속에서 사회 시대상과 산업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이 곧 산업 속에서 걸어온 디자인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다 명확하게 확인해보기 위해 이 자리에서는 가정과 산업 현장, 백색가전과 사무실 집기들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 디자인 관점에서의 사회와 산업 연구에 대해 정리해 볼 것이다. 모든 것을 면밀히 분석해 보기엔 내용이 방대하므로 디자인 관점과 연관하여 핵심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199p. ~ 274p. 참조)


먼저 가정과 산업현장 속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물들을 비교해보면 그 종류부터 시작해서 디자인까지 매우 판이함을 알 수 있다. 가정에서 사용되는 사물이나 사무 현장에서 사용되는 사물들은 그 형태나 기능만 보고도 어느 환경에 보다 적합한지 구별할 수 있다. 가정용 제품과 사무용 비품은 전달하는 이미지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우리는 그 동안 당연시 해왔으나 처음부터 가정과 산업현장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활용되는 제품들이 구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정 공간에서는 백색가전을, 사무 공간에서는 반듯하고 효율적인 디자인을 찾는 이유의 기원은 디자인이 시작되었던 그 시점, “산업화”로부터 시작된다.

전 근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가정이 가사와 노동이 혼재된 장소였다면 산업화 이후 본격적인 대량 생산화와 분업화가 촉발되어 가사와 노동은 엄격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생각하길 가정은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삶을 누리는 공간으로, 또 산업과 사무 현장은 산업 이념에 따라 보다 효율적, 효과적으로 인력 및 생산력을 관리하고 생산에 종사할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는 관념이 형성되었다. 즉, 산업 및 사무 현장은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 그 외의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한 노동의 장소로, 가정은 경제 활동에서 벗어나 개인의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장소로 우리들 생각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해당 공간에 어울리는 사물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오늘날 산업의 흐름이 바뀌면서 이러한 관념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지만.)




[1950~70년대 사이의 가정과 사무 현장의 비교]

(왼쪽) 1950년대 가정집의 모습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149p.)

(오른쪽) 1970년대 정보 처리실의 모습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180p.)



따라서 각 시대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가정과 산업 현장은 위와 같은 관념의 수요를 구체화해 줄 사물들로 채워져야 했다. 디자인은 이러한 수요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위생과 청결, 전기 설비, 노동절약 등의 이미지를 각종 사무비품 및 가정기구와 제품들에 부여하여 그에 어울리는 형태로 근사하게 변형시켜 왔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들을 구매함으로써 점차 사람들이 가정과 산업 현장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들은 “이래야만 한다”라는 규범으로 확대되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규범과 관념들은 사회와 산업이 변해감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대의 가정과 사무 현장의 비교]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사회와 산업이 변화해감에 따라 기존의 관념들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우리 삶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가정과 사무 현장 속의 사물들과 그 디자인이 산업 속에서 걸어온 길이다. 위의 디자인 관점에서의 연구 사례 뿐만 아니라 서문의 첫 글 “이야기의 출발점, 디자인”에서도 설명했듯이 디자인 관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디자인과 사물, 사회와 산업 사이의 개연성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왜 그런 제품, 혹은 서비스가 등장했으며 어떻게 시장에서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시각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즉, 사물과 그 사물의 디자인을 살펴봄으로써 그 시대 현상에 대한 분석과 답안들을 합리적으로 도출하고 이를 현 상황에 응용할 수 있도록 안목과 시각을 키우는 것이 그 목표이다. 아래의 도표는 이러한 디자인 관점에서 사회와 산업 연구 활동이란 무엇인가를 나타낸다.


[디자인 관점에서의 분석과 응용] 사회와 산업을 읽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를 제공하고, 이를 응용하여 현실의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서문에서 계속 얘기해 온 디자인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관점이란 산업 속에서 사물과 그 사물의 디자인이 걸어온 길을 살피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사물들의 사연을 살피는데 있어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줄 것이며 앞으로도 새로운 산업의 등장과 사회 변화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하는 수많은 지표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바라며 이쯤에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만약 지금까지의 설명이 부족하다 느끼거나 보다 심도 있는 내용을 바라는 사람은 이 글을 쓰는 데 있어 주요 참고서였던 애드리언 포티 교수의 저서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 동안 서문에서 우리는 주로 산업제품들 위주로 살펴보고 이야기를 전개했었다. 소재가 다소 국한되었던 까닭은 그 동안 디자인과 산업이 공장과 기계 생산 위주의 산업화 시대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즉 본문에서 살펴볼 사회와 산업이 처한 시대는 비단 산업제품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 상의 제품과 서비스들까지 난무하는 복잡하고 광범위하기 짝이 없는 시대이다. 정보화 시대, 이 속에서 사물들은 어떤 사연들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